2007년 12월 28일
숨겨진 걸작 공포소설 [메두사]

저자 : 이노우에 유메히토
번역 : 송영인
출판사 : 시공사
초판 1쇄 발행 : 1998년 9월 30일
스포일러가 완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영화감독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 건축가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건축물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 가수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노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
이런 질문과 대답에는 왠지 남다른 기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공포소설가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공포소설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게다가 딱 한 작품만 고르라고 잔인하게 몰아붙인다면 그 대답에 대한 기대치가 조금은 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까. ‘메두사’는 필자에게 그런 소설이다. 딱 한 작품만 고르라면 ‘메두사’라고 늘 답할 수 있는.
98년인지 99년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일본 공포문학 대상 수상작인 ‘제3의 인간’은 필자가 접한 최초의 일본공포소설이자 국내에 출간된 첫 번째 일본공포소설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읽고 속된 말로 필이 꽂혀, 당시엔 인터넷 서점이 없었으므로, 서점이란 서점은 죄다 돌아다니는 발품을 팔아 간신히 찾은 일본 공포소설 ‘메두사’.
메두사의 매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공포/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에서 이보다 더 매력적인 요소는 없을 것이다.
메두사의 가장 중요한 스포일러이자 반전이자 놀라운 설정은 스스로의 몸에 시멘트를 부어 굳은 채 죽은 약혼녀의 아버지 후지요조가 책의 말미에 가면 바로 주인공인 ‘나’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멋진 기적이며 소름끼치는 운명인가. 소설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같은 소설. 소설의 첫 장에 나온 것처럼 나는 어느새 후지요조가 되어 시멘트를 스스로의 몸에 부어야 하는 이 기발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
필자가 어릴 적 그토록 좋아했던 추리소설에 조금씩 식상해지기 시작한 건 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결국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이성의 틀에 갇혀버리고 마는 결말의 정형성 때문이었다.
‘메두사’는 그 어떤 추리소설보다 흥미로운 퍼즐게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 후 그 이성적 상상의 범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링’이 여러 기발한 설정과 장치들로 쌓아올린 인위적인 공포의 진수성찬처럼 느껴진다면 ‘메두사’는 단 하나의 설정만으로 현대인의 견고한 이성이라는 벽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날 것의 자연산 공포가 느껴진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책의 말미에 서평을 쓴 사람이 다름 아닌 김지운 감독이다. ‘시공사로부터 서평 원고를 부탁 받았을 때 난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로 서평을 시작한 당시만 해도 김지운 감독은 막 영화 ‘조용한 가족’을 발표한 신인감독이었다. 그래도 공포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라고 출판사에서 서평을 부탁했던 모양인데 지금 보니 이 또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불행히도 ‘메두사’는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작품으로 집근처 공공도서관이나 찾아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똑같이 절판된 운명에 처해졌던 ‘검은 집’과 ‘링’, ‘오디션’이 멋진 양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재출간되었음에도 이 ‘메두사’만은 여전히 기억의 저편에 박제된 걸작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필자는 믿고 싶다. 언젠가는 이 명품 호러 소설이 당당하게 독자의 곁으로 다시 돌아와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 by | 2007/12/28 14:47 | 공포/미스터리소설 리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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